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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범 목요칼럼] 김장김치에 업혀 온 회한(悔恨)

기사승인 2020.11.26  08: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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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범 전 국회의원 보좌관

문득 잠에서 깬 듯 부리나케 손전화를 집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재 중 전화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바쁠 때 일들이 몰아쳐 오는 내게 오늘도 여지없이 일들이 쏟아졌다.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는 시간을 붙잡아 짊어지고 살았다 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겨우 벗어나 손전화를 손에 넣었을 때다.

“어이 동상, 자네는 왜 하루죙일 연락이 안된다냐?”

내가 제일 의지하고 웬만한 일은 함께 논의하면서 세상일을 도모하는 읍내 형님께서 전화를 여러 번 하셨는데 내가 연락이 닿지 않아서 걱정을 하던 참이라 했다.

-예 성님, 제가 오늘 중으로 꼭 마무리해야 될 게 있어 거기에 푹 빠져 있었구만요. 죄송혀요. 무슨 일 있으시당가요?

“응 그라제. 우리덜이 가는 그 다방으로 싸게 나오드라고.”

-예 성님. 근디요 지가 시방 부안에 없당게요. 한 10분정도 있으면 출발허니 그 때 전화드릴께요.

“잉. 알겄네. 싸게싸게 건너오소.”

저녁밥 때를 지나서야 겨우 나는 예의 그 카페에 발을 들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성님은 그동안 밀린 여러 일들에 관하여 묻고 또 물었다. 묻는 대로 답하고 논의를 하다 느닷없이 저녁밥은 먹었냐고 물으셨다. 식당으로 옮겨서도 밥은 대충 대충 먹어치웠다. 그렇게 수많은 논의를 거듭하고 또 거듭했다. 이젠 자리를 파할 때가 되었는지 성님이 넌지시 내 눈치를 살핀다.

“동상, 오늘 김장김치를 담갔다네. 한 상자 넉넉허니 가져왔응께 얼릉 집에 가소.”

-예? 그렇게나 많이 주신대요? 형수님헌티 고맙다는 말씀디려야 허는디요.

“그러소. 집사람이 자네는 꼭 챙기더만.”

-형수님께서 담가주신 김장김치를 어떻게 감사혀야 할지요.

그렇게 금년에도 여지없이 김장김치 커다란 한 상자를 나는 차지했다. 식당에서 말들을 하느라 대충대충 먹었던 저녁밥이었던지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김장김치 한포기를 꺼내 찬밥덩어리 한 사발을 뚝딱 먹어치웠다. 배부르고 나서야 겨우 김장김치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김칫독에 갈라 담을 요량으로 김칫국물이 흘러나지 못하게 상자 속을 정리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잇값을 못해도 여간 못하는 게 아닌 때가 바로 요런 때다. 어머니가 김장하시던 그 때가 갑자기 떠올랐고, ‘나는 불효를 했다’는 커다란 응어리 하나를 가슴속에 파묻은 채 속앓이를 하며 살고 있는데 그게 떠올랐다. 성님네 김장김치가 나의 응어리를 상기시켜 주었고, 나도 모르게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2년째 어머니김치를 먹어보지 못했다. 먹어보기는커녕 어머니가 김장김치 담그는 모습을 2년째 보지 못했다. 어머니 손맛만큼은 전수받고 싶었는데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천상으로 불쑥 떠나셨다. 그게 2년 전이다.

어머니 손맛을 내 기억으로부터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는 부단히도 애를 태우고 있다. 어머니 손맛을 잊지 않으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맛을 비교하는 버릇이 내게 새로 생겼다. 특히 김장김치는 더더욱 맛을 비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어머니 손맛을 놓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손맛을 잃게 되는 그날이 바로 내가 천상으로 떠나는 여행일지를 채우는 첫날이 될 것이다.

어머니가 천상으로 여행을 떠나신 이후 지난 2년 내내 나는 김치를 얻어(?)먹고 있다. 아이들과 아내는 생활본거지인 서울을 아직은 떠나지 못하고 나만 어머니 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지내는 형님들과 형수님들이 작년에 나눠 준 김치가 김칫독 2개에 나뉘어져 아직 김치냉장고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벌써 김장철이라고 김칫독 3개를 금년 김장김치로 채웠다.

그런데서 나는 김장김치에 녹여있는 깊은 회한을 줄줄이 엮어 내면서 내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천상으로 여행을 떠나시기 전까지 나는 겨우 두어 차례 김장김치 담그는 일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아프다. 참말로 많이 아프다. 내 마음이, 내 몸뚱이가 어쩜 이리도 아픈 것이더냐.

바쁘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있었고, 건강하시니 주도적으로 하시고픈 어머니 속마음을 헤아린다는 핑계가 있었고, 아들놈이 김장김치 담그는 일에 나서는 꼴을 어머니가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핑계가 있었고, 내 자식들과 아내마저도 어머니 김치가 최고라는 응원을 발판삼아서 김치만큼은 어머니가 직접 하셔야 한다는 핑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사실은 추운 곳에서 종일토록 김장하느라 시간을 축낼 수 없다는 얄팍한 나의 핑계였다. 그래서 더 아프다. 그 핑계거리를 영원히 걷어낼 수 없어서 더 아프다.

이제 더는 어머니 김장김치를 맛볼 수 없는 사내가 되어 종내는 김장김치를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꿈을 지니고 내일의 시간을 맞는다. 어머니 손맛이 깊게 묻어나는 김장김치를 한 번 맛보는 꿈을. 핑계거리들이 어머니로부터 용서가 되고 하나씩 흩어지는 꿈을. 김장김치로부터 쏟아져 나온 나의 회한을 엎어먹을 그 무엇이 내 꿈속에서 피어나길 기대하고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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