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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안현 관아.. 도대체 무슨 일이(1)

기사승인 2021.02.18  17: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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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지 1권(2015년 발행)에 "부안 향교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607년에는 만화루를 신축하고 , 1848년에 양사재 신축등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 1894년 현감 조연명이 동재와 서재를 신축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조 부안현 관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부안군 관계자에게 자문을 구해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김제 관아(사적 제482호) 안내판에는 "김제군 관아는 지방 통치 기능을 담당하였던 곳으로 현종 8년 1667년에 군수 민도가 세웠다고 한다. 동헌의 이름은 근민헌이었으나 숙종 25년 1699년에 고쳐 지으면서 사칠헌으로 바꿨다. 현재 동헌은 고종 18년 1881년에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1960년대 초까지 읍사무소로 사용하였고, 198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부안현에 대한 기록을 정확히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영조(1757~1765) 시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여지도서는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기초로 하여 방리坊里, 제언堤堰, 도로道路, 전결田結, 부세賦稅, 군병軍兵 등의 항목이 추가되었다. 조선 후기 인문지리지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인정받고 있다.

부안에 대한 소개 대부분이 여지도서에 소개된 건치연혁建置沿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지도서에는 1416년 12월 보안현과 부령현을 합쳐 부안현으로 했으며, 1417년 흥덕진興德鎭을 없애서 부안현에 옮겨 소속시키고 부안진扶安鎭이라고 부르고, 현감을 두게 된 것은 1423년 이후였다. 부안진은 전주진에 소속시켰다.

중요한 것은 부안진이 설치된 것은 흥덕진이 없어진 1417년 이후여서 부안현 관아 건물도 이 시기에 세웠을 것이며, 부안 향교 또한 1414년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때 비슷한 시기에 부안 관아도 형성되었다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안 읍성이 145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487년 완성되었으며, 성곽 규모는 돌로 쌓았으며 둘레 16,458척, 높이 15척, 안에 우물이 16개로 기록되어 있다.

김제·고창과 같이 현존하는 관아는 없어도 소중한 부안현 역사에 대한 기록은 찾아 후세에 남겨야 한다.

한편 김형주 선생은 각종 저서에서 1900년대까지 남아 있던 그 많던 부안현 관아와 읍성이 깡끄리 없어진 것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편집자: 부안현 관아와 읍성에 대한 문헌이나 자료(사진) 등을 보관하고 있다면 부안인터네신문 010-5683-8040으로 연락바랍니다. 소중한 역사를 방치하면 안되므로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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