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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범 목요칼럼] 현수막보다는 말씨와 솜씨와 맵시를 내다걸자.

기사승인 2021.02.11  07: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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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범 전 국회의원 보좌관

오늘은 설맞이 연휴 첫날이다. 벌써부터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5인 이상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졌다. 위반에 대한 10만원 과태료까지 책정해놓고 말이다. 급기야 가족까지도 주소지가 다르다면 함께 설맞이를 하지 말라고 통고(?)해둔 상태다.

여기저기서 아우성도 있었지만 대개는 수긍하고 지키려 애쓰고 있는 형국이다. 이게 우리네 일상이다. 법대로 즉 법의 지배를 당연시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간간이 이를 내팽개치려 드는 집단들도 있긴 하지만 이게 어찌 그들 맘대로 된단 말이던가. 맘대로 즉 인의 지배가 아닌 법대로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규정하여 민주정체(民主政體)를 천명하고, 이어지는 제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규정함으로써 주권재민의 전형이 헌법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이 왕이란 얘긴데 세상이 어디 그렇기만 한가. 힘세고 목소리 큰 사람이 때론 대접도 받는 세상이다 보니 필부국민이 어디 왕임을 내세울 수가 있단 말인가. 필부국민이 진정 왕으로 대접받아야 하는데 인정에 끌리고 인연에 끌리고 주변에 끌리다 보니 이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게다가 완장이라도 차고 있다면 이는 그야말로 절대(?) 권력인데 어디 감히 필부국민이 왕이라고 대들 수가 있다던가.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뜬금없이 헌법을 들먹이는지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법의 테두리를 떠나 산지 오래되었는지라 헌법을 들먹이는 나도 좀 겸연쩍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세상살이가 어디 법(法) 없이도 살만큼 그렇게 만만하던가. 법의 지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법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조금은 언급할 필요가 있어서 뜬금없는 헌법을 소환했다. 더욱이 설맞이 풍경을 살피고 살피다 든 생각이니 크게 나무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가득이다.

뒤돌아보자니 세상살이 곳곳에서 법대로 즉 법의 지배가 망가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우리네 일상이 법을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도 느닷없는 행태들을 접하는 경우가 생기면 불쑥 법의 잣대가 나를 사로잡아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묵인하고 용인하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괜히 맘만 심란하다. 그래도 요지경속 설맞이 풍경을 한 번 돌아보자.

부안읍내는 물론 면소재지 거리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은 정말 요지경속이다. 불법현수막도 한몫 단단히 한다. 설맞이 세시풍속(?)에 딱 맞는 지는 차치하고 그 오색찬란함이 가히 현란할 정도다. 그 현란함에 더해 봐달라고 뽐내는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한결같게도 자기네 이름과 사진이 함께 덧붙어 있다. 설맞이 인사치레로 내거는 현수막이 요정도로 벌일 일이라면 부안군과 부안군민의 자존을 살리는 일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가 분명해진다.

저 정도라면 그들이 평소에도 부안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했고 더 나아가 그걸 표출했어야 옳다. 되새겨보자니 그들 대부분은 부안문제를 표출하는 현수막 한 장 내건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서 좀 씁쓸했다. 조용한 설맞이를 하라는데 누굴 위해서 저 현수막은 걸려야 했을까.

지난 1월 14일에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던 새만금 2호방조제 관할권만 봐도 그렇다. 이 같은 열정적인 행동으로 설맞이 현수막을 내걸 정도라면 방조제 관할권에 관련하여서는 분기탱천(憤氣撑天)하는 맘을 담은 현수막으로 부안읍내를 도배질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현수막 한 장 보지 못했다. 이웃한 김제시 거리거리마다엔 이미 야인으로 살고 있는 전직 시장을 칭송하는 현수막이 넘쳐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펄럭이고 있다. 새만금 2호방조제는 김제땅이라고 세상을 향해 펄럭이고 또 펄럭인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한결같게도 다음 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려 맘먹고 있는 사람들이 내건 현수막인 것처럼 보인다. 누구는 교육감에 출마할 것 같고 또 누구는 군수에 출마하려 들 테고. 지방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속내가 담뿍 들어 간 현수막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설맞이 인사를 빌미로 이름 석 자와 얼굴을 알리기 위한 것 같은데, 과연 그 이름을 기억할 부안군민이 몇이나 될까.

작은 귀퉁이 어디에고 내일을 그려내는 청사진을 품은 현수막을 나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공직선거법? 당연히 지켜야 한다. 다만 미래비전을 담고도 공직선거법을 뛰어넘을 위트와 해학(諧謔)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부안군과 부안군민을 향한 실천행동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죽은 자식 뭐 만지기라고 맨날 뒷북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안군과 부안군민을 위한 실천행동의 경중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서 가야 할 좌표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함께 살펴야 하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보이질 않아서 참 난망하다.

다시금 대한민국헌법으로 돌아가서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라고 천명하여 필부국민 그 누구라도 지방정치와 지방행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오직 참여자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참여의 정도를 결정하면 된다. 어떤 의미에선 이게 바로 지방자치의 본질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치 즉 지방자치의 두 축인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담임하고자 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선택해야 할 것인가. 설맞이 현수막처럼 찾아오는 때마다 현수막정치로 공무담임권을 가질만한지 분간할 수 있는가. 이를 분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어도 현수막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외, 다른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두어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말씨와 솜씨와 맵시를 잘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제때에 제대로 표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와 행정은 이해당사자간 설득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할 정도의 지방자치단체에선 설득은 필요불가결적 정치행정의 요소이다. 더욱이 설득은 당사자 간 진중함을 필요로 하는 정치행정의 요소로써 말과 글과 행동으로 직접 나서지 않으면 되레 꼬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면 강압이 생기게 되고 결국은 법대로가 아닌 맘대로가 결론을 끌어내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현수막을 내걸어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현수막 어딘가에 말씨와 솜씨와 맵시를 담아서 부안군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내는 게 공무담임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근본자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안군민을 향한 청사진을 그려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부안군의 미래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곧 무능으로 부안군과 부안군민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 이의 반증이 바로 새만금 2호방조제 관할권에 관한 지자체간 분쟁의 결론이다. 그 어느 곳보다 확실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죽기 살기로 헌법재판관과 대법관들을 설득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결론적으로 첨언하자면 말씨와 솜씨와 맵시로 대표되는 부안군역량이 부족했을 뿐이다.

둘째, 부안군과 부안군민이 안고 있는 현안문제를 해결하는 명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이에 대한 재원마련의 대안을 부가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부안군이 안고 있는 최대의 현안은 고령화를 동반하는 인구감소이다. 인구감소는 경제공동체로서의 부안군민의 삶의 가치와 직결되는 가장 큰 문제다. 출생인구의 감소와 고령사회를 뒷받침하는 복지문제(현금지원과 같은 복지정책) 이전의 커다란 사회적 문제이다. 그 무엇보다 시급하게 해결할 실마리라도 찾아야 한다.

작년 말쯤으로 기억한다. 부안군 인구정책팀에선가 인구감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아이디어를 공모한 적이 있었다. 많은 부안군민이 여기에 정책아이디어를 제시했을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취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책아이디어 공모에서 어떠한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현재까지도 나는 모른다. 공개적으로 그 결과를 공표했는지 알 수가 없으나, 상상컨대 획기적인 정책대안이 제시되었다면 부안군청사 전면에 내보란 듯이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었을 것이다. 그게 말씨와 솜씨와 맵시로 무장한 설득력에 기한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부안군민의 총의를 모으는 방법 중의 하나로 얻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수막마저 볼 수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설맞이 현수막정치, 안구를 거스르는 장식품이 아니길 갈구한다. 부안군수와 부안군의회 의원 혹은 전북도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하시라도 부안군 현안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헌법 제25조가 천명한 “공무담임권”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망(願望)한다. 나는 이전의 조인범 목요칼럼에서 인구감소를 사회적 여러 현상의 하나로 보고 정책마련을 촉구한 바가 있고, 이를 달성한 재원마련을 위해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부안군자산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 바가 있다. 이의 선행조건으로 나는 부안군조례제정과 부안군민의 총의를 모아갈 것을 강조한 바가 있다.

부안군 정치와 부안군 행정을 담당하고자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은 그들 맘대로가 아닌 법대로 미래를 열어젖히고, 오직 부안군과 부안군민을 향한 혜안으로 부안군 현안문제에 더 많은 열정을 표출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너도나도 똑같은 월급쟁이로 4년을 허송세월한다면 부안군민이 너무 서글프고 암울하지 않겠는가. 현수막보다는 말씨와 솜씨와 맵시를 내다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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