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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0919~20201119 부안(부령) 김씨 할머니 이야기

기사승인 2020.11.26  08: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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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0919 도곡 이유, 부인 부령 김씨 순절
20201119 부안군 의회 행정사무감사 회의록

15세기 유럽 역사에 나오는 잔다르크는 100년간 지속되던 잉글랜드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기폭제 역할을 하였던 프랑스 소녀(당시 16세)이다.

16세기 조선에서는 왜적들의 침입(정유재란)하여 살인·약탈이 극심할 때 부안군 상서면 청등벌에서 의려장 도곡 이유 부인 부령 김씨가 단검과 죽창을 들고 살아 있는 의병들과 함께 왜적들을 향해 돌진하여 순절했던 이야기가 2020년 11월 19일 부안군 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재조명되었다. 도곡 이유의 부인 부안(부령) 김씨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부안군 옹정에 살던 부령 김씨 현감 수복의 장녀는 상서면 도화동으로 시집을 간다. 남편은 함평 이씨(구 함풍 이씨) 浪谷 李億榮의 아들 이유李瑜이다. 남편의 생부는 대사간을 지낸 竹谷 長榮이지만 숙부(億榮)에게 자식이 없어 양자를 가게 되었다.

남편의 호는 도곡桃谷이며 마을 사람들은 남편을 도곡 처사라고 불렀다.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마을 도화동에서 학문에 전념하는 도곡 처사를 내조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도곡 처사는 장인 부령 김씨 현감 壽福의 도움으로 강당을 증축하여 400여 명의 문하생들에게 학문과 충절(충성과 절의)를 가르쳤다.  

부인 부령 김씨 집안은 아버지가 장수 현감을 지냈으며, 조부 서성瑞星은 한림학사와 이조-호조-예조-형조 정랑과 좌랑, 나주 목사를 지낸 淸修齋이다. 現 부안(부령) 김씨 승지공파이다.

중앙 관직 진출도 고사하고 도화동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던 도곡 처사에게 큰일이 벌어진 것은 1597년 9월 정유재란 당시 왜적들이 줄포만을 거쳐 침입하여 살인을 저지르자 도곡 처사는 의병을 모아 청등벌 전투에 참여하여 왜적을 무찌른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의병들에게 전투 상황은 끔찍했다. 후속 부대는 오지 않았으며 화살까지 떨어져 조총을 쏘며 달려드는 왜적을 상대할 수 없었다. 결국 도곡 처사는 적의 흉탄에 순절했으며, 이러한 소식을 들은 부령 김씨는 단검과 죽창을 들고 의병들과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어 한날한시에 순절하게 되었다. 아들 셋을 남기고 충절을 지킨 도곡 이유 부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청등벌에 타루비를 세웠다.

조선왕조실록(1597년 10월 13일)에는 전라도 관찰사 황신이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관아를 버리고 도망간 수령들 명단에 부안현감 권성도 들어있다. 당시 왜적의 침입을 죽음으로 물리친 사람들은 관군이 아닌 의병이었다.

1597년 4월 15일 채홍국 장군이 지휘하는 의병들은 호벌치에서 역시 죽음으로 나라를 지켰다. 의병장 채홍국은 활을 쏘며 항전하다 양 손가락이 절단되었지만 육박전을 감행하여 최후를 맞게 된다.(출처:야수실기) 지금에 와서 당시의 전투에 대해 역사적 사실(시기와 장소)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인정하기를 꺼리고 있다.

부안군지 4권(2015년) '부안의 인물' 에 김씨 부인 11명 나오지만, 남편의 뜻을 받들어 칼과 죽창을 들고 왜적을 향해 뛰어든 도곡 이유 부인 부령 김씨는 소개되지 않았다.

2020년 11월 19일 부안군 의회 김정기 군의원은 행정사무감사에서 도곡 이유와 부인 부령 김씨를 민충사에 모셔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1597년 9월 19일 이후 423년 만에 도곡 선생 부부 충절이 부안군 의회 회의록에 남겨지게 되었다. 김정기 군의원도 부안(부령) 김씨이다.

한편 도곡 선생과 낭곡 선생 비문 작성에 내노라 하는 간재 문인들이 앞다퉈 힘을 보탰다. 그중에서 간재 문인 부령 김씨 後滄 澤述은 恭人金氏墓表를 작성했다.

(타루비墮淚碑는 비문에 적혀 있는 사연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0년 간재 문인 후창 김택술은 도곡 부인 부령 김씨에 대한 묘표를 만들었다.(출처:도곡실기)
빨강색 표시 부분이 도곡 이유 부인 부령 김씨(출처:함평이씨 인터넷족보)
부안 옹동에 살던 현감 수복 장녀가 이유에게 시집을 갔다(출처:부안(부령)김씨 족보)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부안 현감 권성은 관아를 버리고 도망갔다(출처: 조선왕조실록)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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