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김정기 군의원이 지켜본 '동림서원' 이야기

기사승인 2020.10.27  19:03:50

공유
default_news_ad2

부안군 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정기 의원 자택은 동림 서원 유허지 옆에 있다. 

작고하신 아버지로부터 동림 서원을 복원해야 한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 사업이 본인의 사명이라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한다.

동림 서원을 부흥시킨 사람들은 여산 송씨, 나주 나씨, 부안 김씨 시직공파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지금은 유허비만 남아 있지만 반계 실학사상과 후학들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발굴과 복원 당위성은 충분하다. 

특히 반계는 부안 사람 신경준, 황윤석, 위백규, 이복원, 하백원, 이윤성 등을 지역 실학자로 배출하였다.

반계서당을 찾아온 사람들이 종점으로 선택한 곳이 전북 부안군 상서면 동림 마을이다. 반계 유형원을 배향한 동림 서원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부안 3현은 지포 김구, 반계 유형원, 간재 전우를 말한다. 지포는 고려 시대 명현이며 성리학을 중국에서 최초로 유입했다는 주장이 있다. 관직에서 나와서는 부안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했으니 부안에 최초로 성리학을 들어오게 한 장본인이다. 지포 업적에 대해 간재 선생이 쓴 기록이 부안읍 선은동 지포 유허비에 남아 있다.

반계 유형원은 32세 1653년에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에 내려와 정착하게 된다. 반계의 절친들은 동림 마을에 사는 부안김씨 시직공파 김윤필이며 반계하고는 사돈이 된다. 김윤필 아들 담계 김서경(1648~1681)은 반계의 제자로 부안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반계를 배향하는 반계사는 부안 지역의 문화유씨, 나주나씨, 여산송씨가 중심이 되어 1693년 소산면 파산에 창건되었으며, 1711년 유림의 논의에 따라 삼우당 유문원, 담계 김서경을 추가 배향한다.

반계사는 1737년 상서면 동림으로 확대 이전하여 '동림서원'이라고 하였다. 1789년 초당 김회신을 추가 배향한다. 초당은 부안김씨 시직공파 파조이다. (참고:문화재청 김대승 학예연구관 발표문)

한편 1770년 반계수록은 임금의 명으로 활자로 간행된다. 저술 이후 100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경세서로 인정받았다. (출처:실학박물관)

부안 3현을 통해 인문학 성지로 거듭날 수 있는 도동 서원, 동림 서원, 간재 사당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