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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 유형원 "동림서원"을 지키고 있는 부안 사람들

기사승인 2020.10.26  19: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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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부안군 우반동 반계서당
1693년 반계사-파산서원-1737년 동림서원
부안(부령)김씨 시직공파, 여산 송씨, 나주 나씨 주축

한국실학학회와 실학박물관이 주최하고 부안군청이 후원하는 '반계 탄신 400주년을 준비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10월 23일 서울 코리아나호텔 7층에서 열렸다.

반계 유형원의 학문 연원과 지역적 특색이라는 주제에서 문화재청 김승대 학예연구관은 '부안 동림서원의 건립과 변천에 대한 연구: 「동림서원지」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동림서원에 대한 연구는 각종 고문서와 동림서원지를 통해 17세기 부안 유림들의 활동과 사회생활 전반을 알 수 있는 근거를 이번 학술 대회에 소개하였다.  

부안인터넷신문은 부안군청 문화관광과(과장 채연길) 협조로 김승대 박사의 주제 발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조선 후기 실학의 비조로 알려진 반계 유형원(1622~1673) 생애에서 부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부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계 유형원이 부안 우반동에 내려온 1653년은 조선 전체가 왜란과 호란으로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은 반계 9대조 하정 유관의 사패지이고 친인척이 살고 있었다. 반계는 이곳에서 20년간 공부하며 반계수록을 집필하고 제자를 키우다가 죽었다.

반계 선생하고 벗으로 지낸 부안人들은 부안(부령)김씨 김윤필, 여산송씨 사산 송시추, 나주나씨 나용보 등이 있으며, 김윤필의 자 담계 김서경은 부안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반계의 제자이다. 송시추와 우정은 '사산 송씨의 서재'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반계 유형원을 배향한 서당은 반계 사후 20년이 지난 1693년 소산면 파산(현 부안군 주산면 사산리 934 일대)에 반계사를 창건하였으며, 1737년 반계사는 부안군 상서면 동림으로 이전하여 동림서원이라고 하였다.

동림서원에는 반계 유형원, 담계 김서경, 삼우당 유문원, 초당 김회신을 모셨다. 초당 김회신은 부령김씨 시직공파 파조이다. 결국 동림서원을 번성시킨 사람들은 부안(부령)김씨 시직공파, 여산 송씨(사산 송시추), 나주 나씨( 반계 절친 나용보) 등이다.

반계수록은 6촌 동생인 유재원(삼우당 유문원 동생)이 17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 관직에 있으면서 서두르기 시작해서, 반계 실학을 이어받은 양득중(實事求是를 최초로 주창함)의 상소로 1770년 반계수록이 간행되었다.

1770년 반계수록이 간행되고, 부안(부령)김씨 시직공파 파조 초당 김회신이 1789년 동림서원에 추가 배향되며, 1794년 동림서원 강당이 창건되는 등 동림서원은 우반동 반계서당과 더불어 확고한 반계학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 힘입어 1794년 12월  전라도 유림 445명은 동림서원 사액을 상소하게 된다. 445명 이름은 승정원일기에 기재되어 있다.

반계 유형원에 대한 업적은 인정되지만 서원이 너무 많아 국가 재정이 힘들 지경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액을 유보한다.

동림서원 관련 고문서는 재임안(임원 명단), 서재 유생안(유생 명단), 양사재 계안(유생 면학 후원자 96명/부령김씨 43명)으로 이것을 통해 당시 부안지역 상황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소개했다.

김승대 박사는 동림서원지 4책 90편에 대한 번역 작업이 필요하며, 반계사-파산서원에 대한 정확한 위치 파악, 동림서원 관련 고문서를 찾는 일과 심층적인 문헌 고증작업, 동림서원 발굴 조사 등을 남겨진 과제로 제시했다.

아울러 부안군에 산재되어 있는 반계 유형원 관련 유적들에 대한 하나의 묶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반동 반계서당, 반계 고택지, 동림서원지, 담계 김서경 묘소, 사산 송시추 묘소, 석동마을 나용보 묘소 그리고 반계 소유 상서 농장터와 동진 농장터를 적시했다.

말미에서 김승대 박사는 우반동은 반계의 삶의 공간이었으며, 변산은 반계의 휴식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부안군 상서면 동림마을 동림서원 터에는 사당 건물로 추정되는 주호석과 2개의 비석이 남겨져 있다. 비석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된 동림서원터에 1908년 부안 후학들이 세운 것이며, 1939년 일제 강점기에도 동림서원 4현 유허비를 세웠다.

반계 유형원(반계수록)을 역사 수업 시간에 배우고 있지만, 반계 실학이 부안 우반동에서 시작되었고, 사후에는 동림서원에서 계속되었다. 그리고 부안(부령)김씨 시직공파, 여산송씨, 나주나씨 등 부안사람들이 일제강점기까지 반계를 배향한 동림서원을 지켰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려야 한다.

반계 유형원이 우반동에서 저술한 반계수록은 당시 조선 시대의 혼란과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나선 개혁 사상가이다. 반계의 실학 사상을 일제강점기까지 실천하며 살아온 부안인들도 재조명되어야 한다.

2020.10.23 반계 탄신 400주년을 준비하는 국제학술대회
동림서원 터(사진:문화재청 김승대 학예연구관 발표집)
동림서원 관련 고문서(사진:문화재청 김승대 학예연구관 발표집)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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