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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이인규 선생, 백두산 마지막 여행기

기사승인 2020.01.18  1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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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단둥에서 강 건너 쪽이 북한 신의주, 오른쪽은 단교

백두산 서파에서 내려와 숙소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숙소에서 중국인들이 저녁에 무슨 파티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다. 다시 아침이 되어서 백두산 북파로 가는 버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해서 합승 택시를 예약했다.

1인당 50위엔씩 4명이 합승해서 출발하여 백두산 북파 매표소 입구까지 약 1시간이 걸렸다. 백두산 입장료가 평일이라 할인되어 105위엔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자마자 백두산 정상으로 출발 대략 30분 정도 고불 꼬불한 길을 따라서 백두산 북파 정상 가까운 곳에 도착해서 약 5분 정도 걸으니까 백두산 북파 정상이다. 내가 무슨 복인지 모르지만 오늘도 깨끗한 천지 하늘을 보았다.

이곳에서 한반도 깃발을 들고 민족의 정기를 느끼는 순간 중국 공안이 서툰 한국말로 한반도 깃발은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다시 다른 곳에서 한반도 깃발을 흔들었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안된다고 하면서 공안에 가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나는 몰랐다고我不知道 (워부쯔다오)를 연신 말했으나 공안은 계속 사무실로 가자고 한다.

내가 계속 모르쇠하고 버티니까? 우선 핸드폰 사진을 지우라고 한다. 그리고 한반도 깃발을 압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보는데서 핸드폰 사진을 지우고 한반도 깃발 빼앗기고 방면되었다. 하하 하지만 또다시 반전 내가 누구인가? 핸드폰에 사진 지운 것은 복원 기능이 있어 바로 복원시키고 백두산 북파 기운을 많이 담고 내려와 장백폭포로 향했다. 장백 폭포에 도착하니 여기에도 우리 한국 사람이 많이 있다.

공안에게 여기서 드론을 날려도 되냐고 하니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사진만 찍고 장백폭포의 기운만 담고 내려와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 후 쉬고 있는데 미국인, 독일인 등이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런데 미국인 두 명은 베이징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어를 잘한다. 아무튼 송장허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420위안 정도 가격으로 저녁을 먹고 더치 패이를 하고 이날 저녁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침에 이곳 송장허 부근에 전통 마을이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전통마을에 가보았다. 전통 마을 입구에서 중국 사람이 내가 한국사람이다고 하니까 한국 돈을 중국 돈 하고 바꿀 수 있냐고 한다. 그래서 마침 15000원이 있기에 대충 중국 돈 환율 계산을 해서 바꾼다. 그러더니 자기들에게 자랑을 한다. 아무튼 중국에는 희한한 곳이 많이 있다.

전통마을인데 조용하고 작다. 여기도 관광객을 상대하느라고 약간은 퇴색이 되었지만, 나름 깨끗이 정리되었고 전통을 간직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대략 한 시간 정도 보내고 다시 돌아왔다.

다시 하룻밤을 보내고 단둥으로 가야 하는 데 기차가 하루에 두 번뿐이다. 그것도 저녁 7시 기차이다. 남는 시간에 숙소 주인에게 물어봐서 이곳 송장허에 있는 자연공원에 들렀다. 자연공원이라고 하는데, 중국 땅이 넓다 넓다 하지만 이곳 공원도 장난이 아니다. 몇 시간을 해매었나 모르겠다. 공원을 다 보고 이곳 송장허 전통시장을 가봤다.

나는 항상 중국 여행을 하면 그곳의 전통시장을 보는데, 이곳은 주로 백두산에서 나오는 산약초가 많다. 특히 인삼과 차가 버섯(125가지 항암효과가 있는 것) 등이 많이 있다. 차가 버섯을 사 올까 하다가 세관에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

이렇게 송장허에서 5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단둥으로 향하는 기차 침대칸을 타고 다음날 아침 단둥에 도착했다.

숙소 바로 앞 강 건너가 북한의 신의주이다. 북한 땅이 보인다. 기분이 이상하다 저녁에 강변을 거닐다 보니 북한을 건너 관광할 수 있는 유람선이 있는데 나는 가고 싶었는데 한국 당국의 허락없이 이 유람선을 탔다가는 또 국가보안법으로 걸릴까 봐 참았다.

신의주 단교는 중국까지 조명으로 조성해놨다. 단교는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이 단교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연합군의 폭격으로 다리가 끊어져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곳 단둥의 역사는 과거에 고구려의 영토였고 위만조선 고조선의 영토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중국 땅이다

단둥 강변에서 그들의 삶을 봤고 주변 상점들 대부분 북한 깃발이나 한국 깃발로 표시해놨지만 대부분 한국인이나 북한인 아니 조선족이 운영하는 상점은 단 하나도 없다. 거의 대부분 중국인이 운영한다. 한마디로 눈먼 한국인들 주머니 털어 보겠다는 속셈이다.

한국인들은 북한상점을 이용하고 북한의 향기를 느끼려고 하고 북한을 조금이라도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이용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우리의 이러한 감정을 이용해 중국의 주머니만 배를 채우고 있다. 만약 중국 단둥에 갈 일이 있다면 절대 그런 곳에 가지 마라고 당부하고 싶다. 민족 감정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그들의 속셈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는 고구려의 천리 장성의 시작점인 호산 장성으로 향했다. 버스는 자주 있는데 종점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곳 호산장성을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의 시작이라고 한다. 참으로 웃기는 역사 왜곡이다.

분명히 세계 학계에서 만리장성에 대한 정의는 동쪽의 오랑캐가 황제의 안위를 위태롭게 한다 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하는 역사서가 기록이 되어있는데 이곳이 만리장성의 시초라고 하니 웃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찌하리. 입장료를 내고 성루를 따라 한참을 걸으면서 보니 성곽의 건축양식은 분명히 고구려 양식이다.

성루의 정상에 오르면 북한 신의주 집단농장도 육안으로 보인다. 북한 국경이 바로 옆에 보이는 곳으로 걸어서 내려왔다. 작은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 된 나라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 왔다

이렇게 단둥에서의 일정은 3일 동안 지내고 단둥역에서 대련으로 향하는데 단둥역에서 북한사람들을 또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북한사람들이 나에게 참으로 친절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다 같은 한민족이 아니냐 같은 단군 후손 들이다고 하니 그들이 좋아한다.

대련에 도착해서 바로 공항으로 향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을 끝으로 나의 단순무식여행 그 7번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인규 시민기자 webmaster@buan114.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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