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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매창이뜸 名唱 李中仙 맺힌恨(2)

기사승인 2024.09.25  15: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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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원(원장 김영렬) 2023년 발간 '김옥진 육자배기(유영대·유민형 著)'에는 부안 매창이뜸에 모셔져 있는 名唱 李中仙 그리고 언니 名唱 李花中仙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 있습니다. 名唱 李中仙이 부안사람들에게 남긴 유언에 32세 꽃다운 나이에 이승을 하직한 아픔이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부안문화원 허락을 득하고 독자들을 위해 名唱 李花中仙, 李中仙, 玉寶 金玉眞을 올립니다.//편집자》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왠지 아십니까? 남들은 나의 소리를 좋아하지만 여러분은 나의 눈물까지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안에서 눈을 감고 싶습니다"

 

名唱 李中仙

이화중선이 '추월만정‘으로 큰 인기를 모으자, 동생인 이중선도 언니를 따라 판소리를 부르게 되었고 남동생 이화성은 고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중선은 소리꾼으로 유명하였는데, 언니 이화중선과 함께 부른 '육자배기'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음반이다.

이화성이 반주한 음반도 여러 장 있다. 이중선과 김옥진이 부른 잡가 '개고리타령’ 음반은 이화성이 장고 장단을 쳤다. 이중선도 언니 못지않은 솜씨였으나, 언니의 그늘에 가려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사진12>는 이영민이 찍은 이중선과 그녀의 관극시가 담긴 사진이다. 앳된 모습이면서, 무언가 초월한 듯한 눈매가 슬프다.

출처:2023년 부안문화원, 유영대·유민형 著 '김옥진 육자배기'

이중선은 말년에 전북 부안에 와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김옥진이 서울에서 맹활약하던 그 시절 이중선은 언니인 이화중선보다 먼저 불귀의 객이 되었다. 

부안 매창공원에 이중선의 묘소가 있다. 우리가 알기로도 참자유를 누리며 살았던 여인 매창의 시비가 있는 곳이 바로 매창뜸이다. 

내가 방문했던 그해 4월, 매창의 시비 옆에 명창 이중선의 묘비를 새로 세웠다. 1932년, 이중선이 죽었을 때 전북의 국악인들이 이곳에 와서 묘도 쓰고 봉분의 떼도 근처에서 사다가 머리에 이고 와서 입혀 줬다고 한다. 50년이 지나고 이번에도 국악인들이 앞장서서 이중선의 묘비를 세우게 되었다.

이중선이 부안으로 내려온 때가 1930년대다. 

'협률사'의 일원으로 지방 공연을 왔다가 부안에 남게 되었다. 이중선은 방춘원芳春園에 머물면서 소리를 하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부안경찰서에 근무하던 조 반장과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었다. 몸이 원체 약했던 이중선은 갑자기 더 허약해져서 부안읍 동중리에 있는 관야병원管野病院(해방 후 봉래병원)에 입원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조 반장의 간병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가 32세로, 언니보다도 훨씬 앞서서 세상을 버린 것이다.

판소리 연구가인 김용근은 이런 이야기를 전해 줬다.

“이중선은 판소리를 통해 1920년대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 삶의 가치를 줬던 대중 여류 명창이자 나라의 해방을 위해 소리 없이 독립운동에 가담하다가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부안에서 이슬처럼 한 많은 생애를 마친 판소리의 가선歌仙입니다. 

이중선이 부안에서 폐병 치료를 받을 때,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왠지 아십니까? 남들은 나의 소리를 좋아하지만 여러분은 나의 눈물까지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안에서 눈을 감고 싶습니다'라고 감동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이분이 바로 이중선입니다.”

이중선은 자신의 소리뿐 아니라 자신의 눈물까지도 사랑해 준 부안 사람들을 사랑하여 부안에 남았고, 부안에 뼈를 묻었던 것이다.

한편, 김옥진의 무대에는 이중선과 임방울이 함께했던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 이들 3인방이 국악계의 무대를 거의 주름을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서울 무대에서 한창 활발하게 빛을 내고 있던 이중선이 1930년대 부안으로 내려와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졸지에 타관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중선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서 전국의 소리꾼들이 찾아와 상여 뒤를 따랐다. 흰옷으로 소복을 한 수많은 소리꾼들이 걸머맨 상여 위에 임방울 명창이 올라서서 작별의 창을 했다. 마지막을 보내는 소리꾼에 대한 소리꾼들의 한 서린 예우였다.

소리는 허공을 날면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과 상여를 맨 소리꾼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장지인 매창뜸으로 향하는 인도에는 수많은 주민들이 운집하여 이중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여메김소리는 이중선 소리꾼의 갈 길을 가다 멈추게 하고 또 가다가 멈추게 하기를 수십 번도 더 했다. 상여 앞머리 쪽에 김옥진은 한 손으로 상여줄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는 임방울의 상엿소리에 맞추어 살풀이 무용을 하면서 상여메김소리를 구슬프게 받아넘겼다.

상여 나가는 모습을 구경 나왔던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참으로 운명이란 것은 묘했다. 명창을 꿈꾸며 소리 무대를 펄펄 날면서 함께 드나들었던 이중선의 상여 아래서 만난 임방울과 김옥진의 부안 해후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출처:김옥진 육자배기(부안문화원, 유영대·유민형 著, 2023년)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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