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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도동서원 비밀.. 홍재일기에 있다

기사승인 2024.03.27  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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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東書院 養士齋
道東書院 黜享

문정공 지포 김구를 주벽으로 모시고 있는 부안 도동서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서원(1534년, 중종29)이라는 학계 주장이 있다.

그동안 도동서원에 대한 의문점은 서원의 규모이다. 이것을 입증하려면 발굴조사를 통한 유적이 발견되거나, 아니면 고문서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2022.03.21 도동서원 유적 2차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가 부안읍 연곡리 도동서원 유허지에서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모 대학 건축과 교수는 발굴된 강당의 규모가 작아서 추가로 발굴조사를 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발굴조사를 해봤는데 서원 규모가 아니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두 번째로 입증해야 될 사안은 고문서를 통해 이곳의 규모가 어떠한지를 찾아내야 한다. 

상서면 동림서원에 대해서는 전북도청 김승대 학예연구관이 지난 2020년 10월 23일 '반계유형원 국제학술대회'에서 동림서원 관련 고문서 東林書院本誌, 齋任案, 養士齋契案,  西齋儒生案 등 4건을 통해 서원 규모를 입증한 바 있다.

도동서원 역시 書院本誌, 齋任案, 養士齋契案, 儒生案 등이 발견된다면 서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3월 24일 부안문화원(원장 김영렬)은 석정문학관에서 도동서원에서 공부한 학생들 명단(원적, 1962년 2월 19일 작성한 원생 명단), 도동서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서명한 방명록(심원록, 1692~1724년 방문객)을 전시한 바 있다. 

한편, 주산면 홍해마을 奇幸鉉이 1866년부터 1911년까지 기록한 鴻齋日記에 도동서원에 養士齋 기록이 있다.

▶1868.10.03. 예동에 사는 민우가 와서 함께 道洞 養士齋에 갔다. 金奎爀, 金秉鏞 어르신을 뵈었다.

▶1868.10.27. 태서泰誓가 다시 와서 말하기를, 道東書院은 내일 출향(黜享)한다. 감록監錄에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서원이라는 말이 있다.(출처:국역 홍재일기)

부안 도동서원에 養士齋가 있었음을 홍재일기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다. 또한 도동서원이 1868.10.28 黜享(출향, 문묘에 배향된 위패를 치우는 것)을 하는 것으로 훼철되는 것을 소상히 기록했다.

서원 훼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던 많은 학자들이 있었지만, 부안 주산면 홍해 마을 기행현이 기록한 홍재일기와 같이 서원 훼철 전후 과정을 정확한 자료를 통해 입증하지는 못했다.

김승대 전북도청 학예연구관은 "그동안 道東書院 養士齋 존재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는데 기행현의 홍재일기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향후 도동서원지, 양사재계안, 원적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도동서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원의 창건, 중수 등에 대한 사적(事蹟)을 기록한 서원지(書院誌). 서원에 배향(配享)된 인물과 관련된 자료. 서원 유생의 명단 유안류(儒案類)와 서원 임원 명단을 적은 임원록(任員錄), 서원 운영과 관련한 각종 규약을 수록한 자료, 토지, 노비 등 서원의 경제 기반을 보여 주는 자료 등을 찾아야 한다.(출처:우리역사넷)

출처:홍재일기 탈초집
사진 설명- 2022.03.21 도동서원 유적 2차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사진-부안문화원
사진-부안문화원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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